"뭔가 이상한데"라는 한마디
어떤 분야를 오래 해온 분들에게는 공통된 말버릇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한데"라는 말입니다.
이유를 딱 짚어 설명하기 전에, 감각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코드를 보다가, 지표를 읽다가, 설계를 듣다가 — 아직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딘가 걸리는 느낌. 그분들은 그 작은 어긋남을 잘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 이분도 이 일을 오래, 깊이 해오신 분이구나.’
한동안은 이걸 그냥 타고난 예민함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감각의 정체를, 저는 개발을 하면서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시도 · 기대 · 실제 — 간극이 곧 배움
얼마 전 회고를 정리하다 저는 세 줄짜리 기록 프레임을 하나 얻었습니다. 시도 · 기대 · 실제(Attempt · Expectation · Reality) 입니다.
| 축 | 질문 | 남기는 것 |
|---|---|---|
| 시도 (Attempt) | 나는 무엇을 했는가? | 행동과, 그 판단의 근거 |
| 기대 (Expectation) | 어떤 결과를 예상했는가? | 내 가설 — 판단의 전제 |
| 실제 (Reality) |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사실, 그리고 가설과의 간극 |
핵심은 마지막 줄, 기대와 실제의 간극(gap) 입니다. 간극이 없으면 이미 숙련된 영역이고, 간극이 크면 내 멘탈 모델을 교정해야 할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데"라는 감각은, 바로 이 간극이 벌어지는 순간에 울리는 알람이라고 저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대가 정밀할수록 작은 어긋남도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이상함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 분야에서 기대의 해상도가 높은 사람인 셈입니다. 감탄할 재능이라기보다, 오래 붙들어 온 시간이 기대를 촘촘하게 다듬어 놓은 결과에 가깝습니다.
"아, 되겠거니"가 사고를 부른다
문제는 이 간극을 느끼고도 그냥 넘길 때 생깁니다. 화면의 숫자가 살짝 이상한데 "아, 되겠거니" 하고 지나치거나, 피곤해서 확인을 뒤로 미루는 순간입니다. 제가 겪은 사고들은 대체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 인코딩 이슈. 파일명이 깨지는 걸 건건이 고치면서 "한 번 고치면 되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간격을 두고 같은 증상이 두 번 더 나왔습니다(4/17, 그리고 4/22). 결국 증상이 아니라 원인 — 파이프라인 초입에 UTF-8 정규화 레이어가 없다는 것 — 을 고치고 나서야 재발이 멈췄습니다. 처음 어긋났을 때 "왜 깨지는가"의 간극을 측정했다면 세 번 반복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 규모 오추정. 한 공공 데이터 사이트 전체를 단일 크롤러로 긁으면서 "하루면 되겠지" 했는데, 실제 페이스로는 18시간이 걸릴 작업이었습니다. DPI 조정과 5워커 병렬로 구조를 바꾸고서야 크게 줄었습니다. 착수 전에 샘플 몇 건으로 규모만 재봤어도 훨씬 일찍 방향을 틀 수 있었습니다. "감으로 잡은 하루"와 "실제 18시간" 사이의 간극이, 바로 제 추정 모델이 틀렸다는 신호였습니다.
- 지표를 흘려보냄. 커넥션 풀은 늘 숫자가 "이상해지는" 순간으로 문제를 시작합니다. p50은 멀쩡한데 p99만 튈 때 "잠깐 그러겠지" 하고 넘기면, 그게 풀 고갈(awaiting 증가)의 전조인 경우가 있습니다. 게이지 하나가 기대와 어긋나는 그 순간을, 저는 신호로 받았어야 했습니다.
공통점은 하나였습니다. 기대와 실제가 어긋났다는 신호를 분명히 받고도, 그 간극을 측정하지 않고 기분으로 덮어버린 것. 이상함은 대개 맞았는데, 순진하게 혹은 게을러서 그 감각을 신호로 대접하지 않은 게 문제였습니다.
이상함을 신호로 대접하는 습관
그래서 요즘 저는 "뭔가 이상한데"를 느끼면, 그 자리에서 세 줄을 적으려 합니다.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관찰했고, 둘의 간극이 얼마인지. 그리고 간극이 크면 증상이 아니라 전제를 의심합니다. 커넥션 풀에서 무엇을 얼마나 기다리고 얼마나 오래 살릴지를 정할 때도, 결국 "내가 기대한 수명과 실제 수명이 왜 다른가"를 숫자로 맞춰보는 일이었습니다.
기록은 반성이 아니라 교정(calibration) 입니다. "반성합니다"는 반복해도 행동이 바뀌지 않지만, "나는 A를 시도했고 B를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C가 일어났다"는 원인 분석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 교정을 반복하면 기대의 정밀도가 올라가고, 그 정밀도가 곧 숙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칭찬 앞에서 조금 조심스러운 마음
이 감각이 예민한 분들에게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기준이 높은 분이 건네는 인정은 아무래도 무게가 다르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그 칭찬 앞에서 조금 조심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저처럼 사소한 어긋남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을 곁에 둔 분들은 자꾸 스스로를 견주게 되고, 뜻하지 않게 마음이 눌릴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입니다. 제게 온 칭찬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은근한 비교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으면 마냥 좋아하기보다, 옆에 있는 분의 표정도 한 번 더 봅니다. 잘하는 것과, 그 잘함이 주변을 편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요.
각성 상태로 넘어가는 밤
간극을 붙잡고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각성 상태로 넘어가는 날이 있습니다. 문제가 머릿속에서 계속 굴러가고, 다음 조각이 자꾸 보이고,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지는 밤. 그런 날엔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몰입은 분명 즐거운 일인데, 스위치를 끄는 법을 함께 익히지 못하면 다음 날의 나를 미리 당겨 쓰는 셈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그 이상함을 세 줄로 적어 ‘내일의 나’에게 넘겨두고 노트북을 덮는 연습을 합니다. 간극은 기록해두면 도망가지 않으니, 오늘 밤 굳이 다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요.
맺으며
사실 이 글도 대단한 결론을 내리려던 건 아닙니다. 그저 "뭔가 이상한데" 하고 지나쳤다가 몇 번 데인 제 경험을, 이제는 세 줄로 남겨 두는 쪽으로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잘 챙기는 날보다 놓치는 날이 더 많습니다. 다만 기대와 실제의 간극을 조금 더 정밀하게 맞춰가고 싶다는 마음만은 놓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의 저는, 그 정도의 방향만 붙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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