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오늘 붙들었던 두 개의 답답함
하루 동안 답답한 일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만든 표를 보다가 났고, 하나는 남의 글을 읽다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별개의 일로 적어두었는데, 옮겨 적고 보니 같은 자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둘 다 "알고는 있는데 다음에 할 일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상태였습니다.
이 기록은 그 두 답답함을 각각 풀어보고, 마지막에 하나로 묶어 실험 하나를 설계하는 순서로 갑니다. 결론이 난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 해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1. 명사로 외운 다섯 방향은 손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의 첫 글에서 다섯 방향을 이렇게 외워두었다고 적었습니다.
| 방향 | 걸어둔 특질 |
|---|---|
| 위 | 목적 · 맥락 |
| 아래 | 구조 · 구현 |
| 옆 | 대안 · 비교 |
| 앞뒤 | 흐름 · 파급 |
| 경계 | 조건 · 한계 |
그때 "외워졌는데 그 자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고 적었는데, 한 달을 못 채우고 그 상태가 더 또렷해졌습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은 입구가 없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문이 아니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목적·맥락, 구조·구현 같은 말은 전부 명사입니다. 그리고 명사로 된 목록은 분류표입니다. 분류표를 손에 들고 대상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게 이겁니다.
"이건 어느 칸에 들어가지?"
이 질문에는 손이 나가지 않습니다. 칸을 고르는 일은 대상을 건드리지 않고도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상태를 "아직 덜 외웠나"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더 외워도 같은 자리에서 멈췄을 것 같습니다.
인지 쪽에서는 이 둘을 오래전에 갈라놓았습니다. 무엇이 그러하다는 앎과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의 앎은 저장되는 형태가 다르고, 앞엣것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저절로 뒤엣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Anderson, Psychological Review 89(4), 1982). 명사 목록은 앞쪽에 쌓입니다. 그리고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뒤쪽이었습니다.
그래서 방향마다 동사를 하나씩 달아보기로 했습니다.
2. 오늘 만든 표
| 방향 | 정식 관점 | 기억용 명사 | 생각하는 동사 | 관계를 움직이는 행동 | 핵심 질문 | 쉽게 질문하면 |
|---|---|---|---|---|---|---|
| ↓ 아래 | 구조 · 구현 | 속 | 까본다 | 쪼개서 배치한다 | 어떻게? | 무엇으로 나뉘고, 서로 어떻게 움직이지? |
| ↑ 위 | 목적 · 맥락 | 뜻 | 빼본다 | 필요를 만든다 | 왜? | 이게 왜 필요하지? 없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지? |
| ↔ 옆 | 대안 · 비교 | 옆 | 바꿔본다 | 바꿔 끼운다 | 다른 방법은? | 꼭 이거여야 하나? 다른 걸 쓰면 어떻게 달라지지? |
| ⇄ 앞뒤 | 흐름 · 파급 | 전후 | 돌려본다 | 결과를 따라간다 | 그러면? | 이게 일어나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기지? |
| □ 경계 | 조건 · 한계 | 끝 | 깨뜨려본다 | 선을 넘겨본다 | 언제까지? | 어떤 조건까지 통하고, 어디서부터 깨지지? |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표가 아니라 배치로 들고 있는데, 이번에는 칸 이름 대신 동사가 걸려 있습니다.
위 ─ 뜻 ─ 빼본다
"없애보면 무엇이 아쉬운가"
↑
│
옆 ─ 옆 ─ 바꿔본다 ←── [ 대 상 ] ──→ 전후 ─ 돌려본다
"다른 걸 끼우면" │ "돌려보면 다음에 뭐가"
↓
아래 ─ 속 ─ 까본다
"열면 무엇이 들어 있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경계 ─ 끝 ─ 깨뜨려본다 : 위 네 개를 어디까지 밀면 안 통하기 시작하는가
만들고 나서 표를 다시 들여다본 것이 오늘 기록의 절반입니다. 세 가지가 걸렸습니다.
2.1 다섯 동사가 사실 한 가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까본다 · 빼본다 · 바꿔본다 · 돌려본다 · 깨뜨려본다.
다섯 개를 나란히 놓으니 공통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부 대상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열고, 없애고, 갈아끼우고, 굴리고, 부숩니다. 그리고 전부 "-해본다" 꼴입니다. 되돌릴 수 있는 시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나온 문장이 오늘 제일 남는 문장입니다.
이해했다는 증거는 설명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손을 대볼 수 있는가다.
설명은 외워서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걸 빼면 뭐가 아쉬워지나"는 외운 문장으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빼본 적이 있어야 나옵니다. 명사가 답답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명사는 제가 이미 아는 것을 정리해주고, 동사는 제가 아직 모르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 필요한 쪽은 뒤엣것이었습니다.
2.2 열 하나는 이름을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표에서 생각하는 동사와 관계를 움직이는 행동이 겹쳐 보였습니다. 까본다와 쪼개서 배치한다는 같은 말 아닌가 싶었는데, 다시 보니 주어가 다릅니다.
- 생각하는 동사 — 제가 저에게 거는 명령입니다. "까봐."
- 관계를 움직이는 행동 — 그 결과로 대상 쪽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까면 쪼개져서 배치됩니다.
그러니까 이 두 열은 하나가 중복인 게 아니라, 앞의 것이 입력이고 뒤의 것이 출력입니다. 다만 지금 이름으로는 그게 안 읽혀서 이렇게 바꿔두려고 합니다.
| 지금 이름 | 바꿀 이름 |
|---|---|
| 생각하는 동사 | 내가 하는 것 |
| 관계를 움직이는 행동 | 대상에 일어나는 것 |
뒤엣것이 필요한 이유는 검사기이기 때문입니다. 까봤다고 생각했는데 쪼개져서 배치되지 않았으면 안 깐 것입니다. 동사를 실행했는지 여부를 제가 스스로 판정할 수 있게 해주는 자리라, 지우면 안 되는 열이었습니다.
2.3 한 방향에 이름이 셋이 되었습니다
이게 마지막으로 걸린 것입니다. 지금 한 방향에 이름이 세 개 붙어 있습니다.
- 메커니즘 · 의도 · 대안 · 파급 · 불변식 (전에 붙여둔 용어)
- 속 · 뜻 · 옆 · 전후 · 끝 (기억용 명사)
- 까본다 · 빼본다 · 바꿔본다 · 돌려본다 · 깨뜨려본다 (오늘 붙인 동사)
셋이나 되면 아무것도 안 외워지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쓰이는 시점을 적어보니 겹치지 않았습니다.
| 언제 | 쓰는 이름 | 하는 일 |
|---|---|---|
| 대상 앞에서 손을 댈 때 | 동사 | 발동시킨다 |
| 순서대로 꺼내볼 때 | 명사 | 다섯 개를 빠짐없이 돈다 |
| 노트에 적어 남길 때 | 용어 |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게 한다 |
한 글자짜리 명사는 소리가 짧아서 순서대로 훑기에 좋고, 동사는 길지만 몸이 반응합니다. 용어는 둘 다 못 하는 대신 나중에 검색이 됩니다. 셋 중 그동안 비어 있던 자리가 첫 줄이었습니다.
명사끼리 한 글자로 맞추다가 앞뒤만 두 글자(전후)가 되었는데, 여기는 억지로 줄이지 않고 두겠습니다. 앞과 뒤를 같이 보는 자리라 한쪽만 남기면 뜻이 반쪽이 됩니다.
3. 그런데도 읽는 것이 답답하고 짜증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앞쪽 절반입니다. 도구는 손에 쥐었는데, 정작 글을 읽는 일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그냥 넘기려다가 적어두기로 했습니다. 도구를 아무리 벼려도 재료가 안 들어오면 소용이 없는데, 지금 막혀 있는 곳이 도구가 아니라 재료 쪽이라서 그렇습니다.
3.1 지금 시대에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도전이 되었습니다
왜 답답한지를 놓고 하루를 굴려봤는데, 지금 제가 잡은 가설은 이겁니다.
읽기는 이미지를 짓는 일이고, 영상은 이미지를 받는 일입니다.
같은 단어를 만나도 두 경우가 다릅니다. 영상에서 만난 단어에는 이미 완성된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 그 단어를 어떻게 그릴지 정해서 화면에 얹어 건네준 것이고, 저는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글에서 만난 같은 단어는 아무 그림도 없이 옵니다. 제가 그려야 합니다.
읽기 이해를 다룬 쪽에서는 이 짓는 일 자체를 이해의 본체로 봅니다.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만들어지는 것은 문장의 목록이 아니라 상황 하나이고, 그 상황 모형을 세우고 갱신하는 것이 이해라는 이야기입니다(Zwaan & Radvansky, Psychological Bulletin 123(2), 1998).
그리고 매체마다 사람이 넣는 힘의 양이 다르다는 오래된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텔레비전으로 볼 때와 인쇄물로 읽을 때, 사람들은 텔레비전 쪽을 "쉬운 것"으로 지각하고 정신적 노력을 덜 넣었습니다(Salomon,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76(4), 1984). 40년 전 매체를 놓고 한 실험이라 지금 화면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매체가 노력의 기본값을 다르게 잡아준다는 지점 하나는 지금도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답답함의 정체가 조금 달라집니다.
답답한 것은 제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지금 짓는 중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받는 일에 익숙한 상태에서 짓는 일로 넘어오면 당연히 힘이 듭니다. 힘이 안 든다면 안 짓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3.2 다만 영상을 적으로 두면 틀립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영상이 사람의 상상력을 망쳤다"가 되는데, 그쪽으로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근거도 약하고, 무엇보다 제 경험과 안 맞습니다.
첫 글에서 저는 비유에 쓸 장면을 서른 개쯤 재고로 쌓아두겠다고 적었습니다. 유추를 떠올리는 자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표면의 닮음이고, 그러니 겪은 장면이 많아야 검색이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 재고의 큰 공급처가 바로 영상입니다. 제가 직접 겪지 않은 장면을 이만큼 쌓아준 것이 영상 말고 없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재고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받은 이미지를 내가 만든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남이 만들어 건넨 이미지에는 그 사람이 정한 조건이 같이 딸려옵니다. 어떤 장면으로 그릴지, 무엇을 빼고 무엇을 키울지가 이미 정해진 채로 옵니다. 그걸 제 것으로 알고 들고 있으면, 조건이 다른 자리에서 그대로 꺼내 쓰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잡힌 항목은 영상을 줄이자는 쪽이 아니라 이쪽입니다.
제가 만든 이미지든 받은 이미지든 틀릴 수 있고, 읽는 일은 그 이미지를 계속 고쳐 나가는 일입니다.
한 번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틀린 그림을 먼저 하나 세우고, 글을 읽어가며 어긋나는 자리에서 고치는 것입니다. 첫 글에서 "근사를 먼저 만들고 정확도는 어긋나는 지점에서만 올린다"고 적었는데, 그게 비유에만 해당하는 규칙인 줄 알았습니다. 읽기 전체가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3.3 읽기에서의 메타인지는 속도를 제가 쥐는 일입니다
그러면 고칠 자리를 어떻게 찾느냐가 남습니다. 여기서 메타인지를 이렇게 좁혀두려고 합니다.
읽기에서의 메타인지 = 읽는 속도를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상태.
사람의 눈은 이미 이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읽기 중 눈 움직임을 관찰한 연구들을 보면, 어려운 단어에서는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앞으로 되돌아가는 움직임이 생깁니다(Rayner, Psychological Bulletin 124(3), 1998). 즉 속도 조절 자체는 이미 무의식에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메타인지는 그걸 의식으로 끌어올려서 손잡이를 쥐는 일입니다. 그리고 손잡이를 쥐려면 언제 당길지 알려주는 계기판이 필요한데, 오늘 그 계기판이 무엇인지가 정해졌습니다.
답답함과 짜증이 계기판입니다.
읽다가 답답한 자리는 대체로 제가 모르는 자리이거나, 제가 세워둔 그림과 글이 어긋나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그 신호를 "빨리 지나가야 할 구간"으로 읽고 오히려 속도를 올렸습니다. 반대로 해야 했습니다.
함정도 같이 적어둡니다. 매끄럽게 읽히는 상태가 곧 이해한 상태는 아닙니다. 자기가 글을 이해했는지 판단하게 하면 사람은 잘 맞히지 못하고, 술술 읽혔다는 느낌을 이해했다는 판단으로 바꿔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Glenberg & Epstein, JEP: Learning, Memory, and Cognition 11(4), 1985).
그러니 계기판을 이렇게 읽습니다.
- 바늘이 흔들린다 → 여기가 작업할 자리다.
- 바늘이 한 번도 안 흔들렸다 → 글이 쉬웠던 게 아니라 계기판이 꺼져 있었을 가능성을 먼저 본다.
읽기 전에 이해의 계단을 나눠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구르지예프·우파니샤드·에니어그램 독서 노트), 그때 적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안다"는 계단이 여기서는 아주 좁은 형태로 내려옵니다. 읽는 동안 지금 속도가 맞는지 아는 것. 그것 하나입니다.
4. 답답함을 하나로 뭉쳐두니 대응이 없었습니다
여기가 오늘 기록의 핵심입니다.
"읽는 게 답답하다"를 한 덩어리로 두고 있었더니, 할 수 있는 일이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참고 계속 읽거나, 덮거나. 둘 다 배우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3.1 의 결론을 한 번 더 조여야 여기서 진도가 나갑니다. 답답함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만들려는데 재료 한 칸이 비어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잘 만들어지는 중에는 답답하지 않고, 못 만들 때 답답합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빈칸이 있으니까 어느 칸인지 물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중"까지만 가면 다시 한 덩어리라 대응이 안 나옵니다. 칸을 먼저 찾고, 그 칸을 채우는 동사를 겁니다. 순서가 이렇습니다.
4.1 판별의 열쇠는 감정이 아니라 속으로 중얼거린 문장입니다
해보니 다섯 방향이 전부 거의 같은 느낌으로 왔습니다. 답답함의 세기나 종류로는 안 갈립니다. 갈리는 것은 그 순간 머릿속에 뜬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게 실제로 손에 잡히는 유일한 단서라, 아래 표는 감정이 아니라 그 문장으로 색인했습니다.
| 속으로 뜬 문장 | 그리는 중인 이미지 | 실제로 비어 있는 것 |
|---|---|---|
| "그래서 실제로는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지?" "이 단어가 무슨 뜻이지?" "덩어리가 하나로만 보인다" |
↓ 속 | 안에 무엇이 몇 개 들어 있는지 |
| "그래서 뭐?" "이 얘기를 왜 하고 있지?" "이 문단 통째로 없어도 될 것 같은데" |
↑ 뜻 | 이게 없으면 무엇이 아쉬운지 |
| "왜 하필 이거지?" "아까 나온 그거랑 뭐가 다르지?" "좋은 얘기만 있는데 대가는?" |
↔ 옆 | 이 자리에 다른 걸 끼우면 뭐가 달라지는지 |
| "’이거’가 뭘 가리키는 거지?" "앞에서 읽은 거랑 안 맞는데" "자꾸 위로 되돌아가게 된다" |
⇄ 전후 | 여기 다음에 뭐가 올지 |
| "너무 잘 읽히는데" "이미 아는 얘기네" "예외가 하나도 안 나오네" |
□ 끝 | 어디서부터 이 설명이 안 통하는지 |
세 번째 열이 판정 문장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걸 말로 못 하면 그 칸이 비어 있는 게 맞습니다. 말로 되면 답답한 게 아니라 그냥 지루한 것이니 넘어갑니다.
4.2 헷갈리는 두 쌍
실제로 읽다 보면 두 자리에서 자주 헷갈립니다.
속 ↔ 전후. 둘 다 "모르겠다"로 옵니다. 가르는 질문은 "지금 이 문장 안에서 막혔나, 문장들 사이에서 막혔나" 입니다. 문장 하나를 아무리 다시 읽어도 안 풀리면 속, 그 문장은 읽히는데 앞엣것과 안 붙으면 전후입니다.
뜻 ↔ 옆. 둘 다 "왜?"로 옵니다. "왜 이 얘기를 하나" 는 뜻이고, "왜 이 방법인가" 는 옆입니다. 앞엣것은 존재 이유를 묻고, 뒤엣것은 선택 이유를 묻습니다.
4.3 칸이 정해지면 동사가 따라옵니다
빈칸을 찾고 나면 2절의 표가 그대로 쓰입니다. 각 칸에 걸 동사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 빈칸 | 걸 동사 | 그 자리에서 할 것 |
|---|---|---|
| 속 | 까본다 | 멈추고 그 말 하나만 따로 연다. 정의 → 최소 예 → 반례 |
| 뜻 | 빼본다 | 이 문단이 통째로 없으면 무엇이 아쉬운지 본다 |
| 옆 | 바꿔본다 | 이 자리에 다른 것을 하나 끼워보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본다 |
| 전후 | 돌려본다 | 어느 쪽이 틀렸는지 표시만 하고 계속 읽는다 |
| 끝 | 깨뜨려본다 | 정말 아는지 경계 질문 하나로 검사한다 |
전후 줄에 규칙을 하나 걸어둡니다. 충돌은 그 자리에서 해결하지 않습니다. 표시만 하고 지나갑니다. 어느 쪽이 틀렸는지는 뒤를 더 읽어야 정해지는 경우가 많고, 그 자리에서 붙들면 대체로 제가 세워둔 그림 쪽을 지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납니다.
4.4 짜증은 방향이 아니라 갈림길이었습니다
마지막 줄만 성격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짜증을 답답함의 강한 형태로 봤는데, 겪어보니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답답함은 대체로 모른다는 신호이고, 짜증은 대체로 들인 힘에 비해 진도가 안 나간다는 신호였습니다. 짜증은 대체로 끝을 가리키지만, 그 전에 한 번 갈라야 합니다.
- (가) 이미 아는 것을 계속 설명받고 있다. →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유창성 착각을 그대로 밟습니다. 판정 문장을 겁니다. "이 설명은 어떤 조건에서 안 통하지?" 답이 나오면 진짜 아는 것이니 건너뜁니다. 안 나오면 안다고 느낀 것뿐이라 속도를 내립니다.
- (나) 글이 실제로 나쁘다. → 덮어도 됩니다. 이건 신호가 아니라 판정입니다.
- (다) 잠이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다. → 같은 느낌이 똑같이 납니다. 이건 이렇게 가릅니다. 다른 문단으로 옮겨도 같은 느낌이면 저 때문이고, 그 문단에서만 나면 글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항목을 같이 적어둡니다.
읽기를 그만둘 권리도 메타인지의 일부입니다.
모든 답답함을 도전으로 승격시키면, 도전 정신이 아니라 나쁜 글에 시간을 다 쓰는 결과가 나옵니다. 신호를 읽는다는 것은 밟을 자리와 지나칠 자리를 가른다는 뜻이지, 전부 밟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4.5 여러 개가 동시에 뜨면 이 순서로
한 자리에서 두세 개가 같이 뜨는 게 보통입니다. 멈추는 비용 순서로 정합니다.
- 속 — 그 자리에서 바로. 단어를 모른 채로 나머지 넷을 하면 전부 "대략 그런 것 같은데요"로만 나옵니다.
- 전후 — 표시만 하고 계속 읽습니다. 어느 쪽이 틀렸는지는 뒤를 더 읽어야 정해집니다.
- 뜻 — 문단이 끝나는 자리에서.
- 옆 · 끝 — 다 읽고 나서.
1번만 기어를 내리고 나머지는 표시로 처리하면, 다음 절의 예산 안에 들어옵니다. 예산을 넘기기 시작하면 대개 2번을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 든 경우입니다.
5. 속도를 조작 가능한 형태로 — 기어 셋
"능동적으로 조절한다"는 말은 아직 명사입니다. 1절에서 걸린 것과 같은 함정이라, 조작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둡니다. 저는 기어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 기어 | 어떻게 읽나 | 목적 | 언제 |
|---|---|---|---|
| 3단 | 제목 · 소제목 · 각 문단 첫 문장만 | 지도를 먼저 만든다 | 글을 열자마자 한 번 |
| 2단 | 그냥 읽는다. 신호가 걸리면 표시만 하고 지나간다 | 진도 | 기본값 |
| 1단 | 신호 자리에서 멈춰 4절 표의 동사 하나를 실제로 실행한다 | 작업 | 표시해둔 곳 중 골라서 |
기어를 내리는 구체적인 방법은 두 가지를 쓰려고 합니다. 소리 내어 읽기, 그리고 그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고 그 밑에 제 말로 한 줄 붙이기. 둘 다 속도를 물리적으로 떨어뜨려서, 의지로 천천히 읽으려는 것보다 확실합니다.
그리고 규칙 하나를 반드시 같이 둡니다.
표시는 무제한, 기어 내림은 한 편에 세 번까지.
예산을 두는 이유는 이 실험의 제일 큰 실패 경로가 여기라서입니다. 신호마다 멈추면 한 편을 끝내지 못하고, 끝내지 못하는 방식은 몇 번 하다가 안 하게 됩니다. 읽는 양이 줄어드는 순간 이 방법은 실패입니다.
6. 나가는 문이 없으면 판정이 안 됩니다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읽는 동안에는 이해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3.3의 결론이었으니, 다 읽고 나서 밖으로 내보내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한 편당 둘 중 하나만 남깁니다.
(가) MAP 세 줄
비유 · 공통점 · 한계를 세 글자로 묶어뒀습니다.
| 영어 | 하는 일 | 문형 | |
|---|---|---|---|
| M | Match | 닮은 것 하나를 고른다 | "대략 ____ 같은 건데요" |
| A | Align | 무엇이 무엇에 해당하는지 줄 세운다 | "____ 가 ____ 에 해당하고요" |
| P | Part | 갈라지는 자리를 짚는다 | "다만 ____ 는 좀 달라서 ____ 입니다" |
이름을 MAP 으로 잡은 이유가 있습니다. 유추의 근거로 첫 글에 인용해둔 Gentner 의 이론 이름이 structure-mapping 입니다. 비유란 두 대상의 관계 구조를 겹쳐 놓는 일이라는 뜻이니, 이 세 단계가 하는 일이 문자 그대로 지도 겹치기입니다. 니모닉과 이론이 같은 단어를 쓰면 하나를 떠올릴 때 다른 하나가 딸려옵니다.
그리고 지도라는 그림이 함정 하나를 막아줍니다. 좋은 비유의 조건은 속성이 아니라 관계였습니다. "둘 다 둥글다"는 지도가 아니라 사진입니다. 겹쳐서 어긋나는 곳이 보여야 지도입니다. P 는 "부분"이 아니라 갈라지다라는 동사 쪽입니다. part ways 의 그 part 고, 뿌리도 나누다입니다.
자리마다 막히는 이유가 다릅니다.
| 막힌 자리 | 그때 나는 느낌 | 실제로 벌어진 일 | 할 것 |
|---|---|---|---|
| M | 뭐에 비유할지 안 떠오른다 | 재고가 없거나, 아직 근사 한 문장이 안 된 것 | 비유를 짜내지 말고 "대략 이런 건데요" 한 문장으로 먼저 내려간다 |
| A | 떠올렸는데 대응이 안 짚인다 | 분위기만 닮은 것을 골랐다 | 소재를 버린다. 대응이 안 되는 비유는 인상이지 비유가 아니다 |
| P | 어디가 다른지 모르겠다 | 아직 대상을 모른다 | 내보내지 않는다. 여기가 검사 지점이다 |
P 가 이 패턴의 전부입니다. M 만 있고 P 가 없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추측입니다. "이건 도서관 같으니까 아마 이렇게 동작할 겁니다" — 그럴듯한 비유 하나면 듣는 쪽도 말하는 쪽도 납득해버려서, 이 선을 넘었는지가 잘 안 느껴집니다. 그래서 규칙 하나만 못 박아둡니다.
P 없이 M 을 밖에 내지 않는다.
그리고 P 에서 나온 어긋남은 설명을 마무리하는 문장이 아니라 다음에 손댈 자리를 가리키는 표시입니다. 흔한 비유로 덮이는 부분은 흔한 부분이고, 안 덮이는 부분이 그 대상 고유의 부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동사를 하나 겁니다. 어긋난 곳이 안쪽 구조면 까본다, 왜 그렇게 만들었나면 빼본다, 다른 걸로 바꿔도 되나면 바꿔본다, 바뀌면 뭐가 따라오나면 돌려본다, 어디까지 통하나면 깨뜨려본다. MAP 이 끝나는 자리가 다섯 방향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나) 동사 다섯 개로 만든 질문 다섯 개
까보면 · 빼보면 · 바꿔보면 · 돌려보면 · 깨뜨려보면. 답을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첫 글에서 적었듯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제가 안다는 증거이고, 답 못 하는 질문은 밖으로 내보낼 물건이라 어느 쪽이든 손해가 없습니다.
이 자리가 있어야 읽기가 소비에서 작업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작은 단위로 계속 굴러가게 만드는 이야기는 예전에 한 번 적어둔 적이 있어서, 여기서는 문턱만 낮게 잡아둡니다. 한 편에 세 줄. 그 이상을 목표로 잡으면 안 하게 됩니다.
7. 이 방식이 틀릴 수 있는 경로
이 절이 빠지면 이 글은 그냥 표가 예쁘게 맞아떨어져서 제가 저를 납득시킨 문서가 됩니다. 지금 보이는 구멍을 적어둡니다.
1. 어려우면 남는다는 믿음으로 미끄러지는 것.
학습에 도움이 되는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는 과제 쪽을 어렵게 만든 경우이지, 읽는 행위를 불편하게 꾸민 경우가 아닙니다. 글자를 일부러 읽기 힘들게 만들어 이해가 올라가는지 본 연구들은 모아놓고 보면 효과가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Xie, Zhou & Liu,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30, 2018). 그래서 이 실험은 답답함을 만들어내는 쪽이 아니라, 이미 난 답답함을 쓰는 쪽으로만 갑니다. 이 선을 넘으면 틀립니다.
2. 신호가 과잉이면 읽기가 멈춥니다. 5절의 예산이 이걸 막으라고 있는 장치인데, 세 번이 맞는 숫자인지는 근거가 없습니다. 해보고 고쳐야 하는 값입니다.
3. 답답함이 늘 모름의 신호는 아닙니다. 잠이 부족해도, 관심이 없어도, 글이 나빠도 같은 느낌이 납니다. 계기판은 무엇이 잘못됐는지까지는 알려주지 않고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만 알려줍니다. 그래서 4.4 의 갈래 나누기가 매번 앞에 와야 합니다.
4. 4절의 표 두 개가 너무 잘 맞습니다. 속으로 뜬 문장 다섯 갈래가 다섯 개의 빈칸에 하나씩 떨어지고, 그 빈칸이 다시 다섯 개의 동사에 하나씩 붙습니다. 사람은 구조가 그럴듯하면 내용이 맞는지와 무관하게 납득하는데, 지금 이 대응이 딱 그 모양입니다. 실제로 읽다 보면 어느 칸에도 안 걸리는 답답함이 나올 것이고, 그때 표를 억지로 지키지 않고 여섯 번째 줄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8. 무엇으로 판정할지
첫 글에서 2026년 10월 초에 다시 열어보기로 했으니, 같이 봅니다. 그때 볼 것을 세 개로 잡아둡니다.
- 읽는 양이 줄었는가. 줄었으면 예산이 잘못된 것이고, 방법을 고치기 전에 이것부터 봅니다. 제일 중요한 지표입니다.
- 한 편에 신호 표시가 몇 개 찍히는가. 0개인 편이 계속 나오면 글이 쉬웠던 게 아니라 계기판이 꺼진 것으로 봅니다.
- 처음 만난 글 하나에서, 자료를 안 보고 동사 다섯 개가 나오는가. 첫 글에서 잡았던 기준과 같은 것인데, 이번에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잽니다.
오늘 남은 문장은 하나입니다.
답답함은 읽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읽기가 지금 어디서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유일한 표시였습니다.
이게 맞는지는 한 달 뒤에 알게 됩니다. 틀렸으면 계기판을 다시 찾는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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